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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회 '책 읽는 오늘' 토프레소 도서 증정 이벤트마감
기간 : 2023.05.01 ~ 2023.06.14 조회수 : 1853

댓글 1개
  • 정지윤
    2023/05/07 14:03

    사랑 우리는 왜 살고(live) 왜 사는가(buy)?

    누구나 소비에 대한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삶에 대한 취향과 기준을 말해 준다. 이 취향과 기준은 어느 쪽이든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된다. 예를 들면 외투를 고를 때 주로 ‘예쁜가, 편한가, 사이즈는 적당한가, 좋은 소재를 썼는가, 관리는 편한가’ 등을 살핀다. 하지만 이 옷을 입은 자기 모습이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더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고른 옷들은 그 주인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옭아맨다. 저자는 맘에 쏙 드는 트렌치코트(a.k.a. 바바리)를 구입하면서 “나를 가두고 제한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그 제약에 저항하는 일”(65쪽)이라는 평생의 실천 과제를 얻었다. 과연 그 ‘바바리’는 “입으면 멋진 사람처럼 보일 줄 알았는데 이미 멋진 나를 잘 드러내 주었다.”(67쪽) 그렇다면 ‘멋진 나를 잘 드러내 줄’ 옷과 물건은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바로 취향이다. 일상이나 업무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일수록 특히 그렇다. 시각적 취향을 만족시키는 유려한 디자인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필요를 넘어선 삶의 면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즉,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일하는 기계, 돈 버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취저’ 제품을 사는 행위는 “인간성을 사수하기 위한 발버둥”(139쪽)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합리적인 소비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소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소비 욕망은 종종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선 너머”(101쪽)를 향하곤 한다. 또 ‘이왕 사는 거’라는 생각이나(저자에게 “이왕 사는 거”는 “곧 사정없이 돈을 쓰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신호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 선택을) 칭찬하리라는 확신”(147쪽)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저자도 외면할 수 없는 강력한 ‘지름신’을 만나 충동적으로 파주의 한 타운 하우스를 질렀다. 입주 당시에는 집 주변에 편의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고, 집 청소와 관리가 힘들었으며, 거액의 대출금을 상환하느라 허덕여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대부분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미래 가치를 고려하기보다 취향에 따라 마음 가는대로 선택한 경험 덕분에 취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소비 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159쪽)
    이처럼 소비는 내 욕망과 마주하는 일이자 나를 더 잘 알아 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사는’ 행위는 나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기왕이면 즐거운 소비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야 삶도, 일상도 즐거워지니까. 반대로 즐겁지 않은 소비, “타인을 죽이고 동물을 죽이고 지구를 죽이는 소비”(198쪽)는 경계하고 삼가자고 말한다.

    사고 팔고 버리는 데에는 취향이 필요하다

    취향과 기준은 물건을 살 때에만 필요할까? 아니다. 다른 이에게 팔거나 물려주거나 버리는 것처럼 물건과 작별하는 경우에도 중요하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찻잔 세트를 ‘당근마켓’에 내다 파는 저자의 친구들처럼 말이다. 저자 또한 찻잔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무려 여덟 벌짜리 은수저 세트를 받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찻잔 세트와 마찬가지로 “처음 샀을 때의 모습 그대로, 주방 도구들이 잠자고 있는 서랍 밑바닥에 누워”(42쪽) 있다. 저자를 사로잡은 미스터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왜 엄마들은 살림살이가 많고, 그 살림살이를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할까? “엄마도 딸과 마찬가지로 소비 욕구가 있다. 하지만 엄마들의 소비가 허용된 영역은 넓지 않았다. 찻잔은 허용된 범위 안에서 취향에 따라 고르고 구입하고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품목”(44쪽)이라는 것이 저자의 추리다. 또 “딸에게 물려주겠다는 목적”은 “엄마의 소비 욕구를 정당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구매한 제품에는 엄마의 취향이 오롯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수많은 세간 매물의 이면에는 엄마와 딸의 취향 차이라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당근마켓에 팔아 버린 엄마의 찻잔처럼 내 취향에 맞지 않는 물건과 작별하는 일은 일종의 ‘홀로서기’다.(19쪽) 저자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총 무게가 1톤에 달하는 40개의 책장을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다가 이를 깨달았다. 심지어 이 책장에는 (책을 만들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알듯) “자가 증식하고 무한 증식한 책들”(16쪽)까지 꽂혀 있었다. “우리가 사랑한 물건에는 영혼이 깃들고, 버릴 수 없는 생명체처럼 바뀐다”는 철학자 페피노 루소의 말처럼, 저자는 “나를 아껴 준 사람의 물건과 작별하는 일은 곧 나를 아껴 준 사람의 영혼과 작별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 물건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날이 작별할 때” 나라는 사람이 비로소 홀로서고 완성된다고 강조한다.(21쪽)
    이처럼 오래도록 함께한 물건을 다른 이에게 팔거나 물려주는 일은 어쩌면 새 물건을 사는 것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거기에는 주인의 소중한 추억과 취향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물건들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가치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차라리 버리는 게 낫다. 이베이에서 저렴하게 낙찰받은 저자의 웨딩드레스가 그랬다. 이 웨딩드레스는 검소하고 착한 아내이자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17년 동안 보관하고 있던 이 웨딩드레스를 “깨끗하고 검소하고 상냥한 신부, 부지런하고 현명하며 맑은 피부와 적당한 몸매를 유지하는 아내,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39쪽)과 함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이 외에도 책에서는 노동자의 권리, 소비 윤리, 동물권과 기후 위기, SNS와 부조리한 특권 등 소비 이면에 도사린 “곤란한 질문, 피하고 싶은 질문”이 계속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

    오래도록 사랑한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

    어느 날, 저자에게 새 바이올린이 생겼다. 아마추어 연주자로 함께 활동하던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다. 새 물건이 주는 쾌감과 산뜻함은 대단하다. 그것은 마치 최신형 건조기로 뽀송뽀송하게 말린 빨래를 막 꺼냈을 때의 기분과 비견될 만하다. 하지만 새 바이올린의 매력을 발견할수록 옛 바이올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옛 바이올린 앞에서는 되도록 새 바이올린에 대한 칭찬을 삼갔다. 19년 동안 저자를 위해 봉사해 준 자가용 앞에서 ‘새 차’나 ‘폐차’ 같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250쪽) 아마도 꽤 많은 사람이 저자처럼 물건에게 말을 건네거나 말을 조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와 물건은 소유자와 소유물의 관계를 넘어 친구와 동반자가 된다. 왜 우리는 소중한 물건과 반려 관계를 맺고 싶어 할까?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그 이유는 오래도록 사랑한 물건에는 우리의 영혼과 추억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술적인 사고를 아주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애정하는 물건에 영혼이 깃든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영혼을 기억의 집합이라고 가정한다면, 추억이 깃든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고 볼 수 있으니까.(255쪽)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음악 동반자인 바이올린과 오래된 자가용 앞에서 예의를 갖추고 조심하는 것이다. 추억이 깃든 물건에 대한 예의는 내 추억에 대한 예의나 마찬가지다. 또한 과거의 나에게 표하는 존중이자, 내가 걸어온 길과 선택들을 긍정하는 태도이다.(257쪽)
    현재의 우리는 예전의 “취향과 선택에 꼭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82쪽) 하지만 물건과의 인연은 구매하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물건을 돌보면서 쌓은 정은 첫눈에 반하던 순간의 짜릿한 희열을 능가하는 마음의 풍요로움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우리가 새것이 주는 짜릿함보다 물건과 오랜 관계를 지속할 때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이유는 세월이 지날수록 물건이 나라는 존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즉, 나와 물건은 서로를 “돌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싫증도 잘 내는 존재’다. 그렇다면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여덟 살 때 첫눈에 반했던 뷰로 책상에서 찾았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인의 취향과 책상의 쓰임은 크게 변했다. 무엇보다 책상의 짙은 갈색은 집 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 책상과의 작별을 고민하던 저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버섯 크림 스프 색 페인트를 다시 칠해 주었다. 그랬더니 집 안 인테리어와도 썩 잘 어울렸고 마음에도 쏙 들게 되었다. 조금 더 정성을 들였더니 그 물건에 다시 반하게 된 것이다.(82쪽)
    우리는 새 물건을 사는 쾌감과 짜릿함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새것은 결국 허름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돌보면서 산다. 또 “오래된 인연, 오래된 몸, 오래된 지구와 살아간다.”(104쪽) 이 책은 그 오래되고 낡은 것들 중에는 새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